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는 일본 현대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으로, '일본의 오즈 야스지로'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인간 내면과 가족의 의미를 섬세하고 깊이 있게 다뤄왔다. 그는 199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도 일본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꾸준히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중개인》 등이 있다.
고레에다의 영화는 자극적인 사건보다 평범한 일상의 틈을 통해 인물의 감정과 관계의 변화를 담아내며, 관객에게 울림과 사유의 여지를 남긴다. 이 글에서는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 세계를 ‘주제’, ‘서사’, ‘인물’이라는 세 가지 핵심 축으로 나눠 살펴보고, 그가 일본 사회와 인간 존재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갖고 접근해 왔는지를 고찰한다.
가족 중심의 주제
고레에다 감독의 거의 모든 작품은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혈연 가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놓고, 사회 구조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묘사하며 그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해 나간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어느 가족》(万引き家族, 2018)이다. 이 작품은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로 구성된 가족이 주인공이다. 생계를 위해 소매치기를 하며 살아가는 이 가족은 외형상 불법적이고 해체된 공동체처럼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로 묘사된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가족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가족을 구성하는 것은 법적 혈연이나 명목적 관계가 아닌 함께한 시간, 감정의 교류, 기억의 공유임을 은근히 말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そして父になる, 2013)에서는 출생 직후 바뀐 두 아이를 중심으로 두 가정이 갈등을 겪는다. 이 작품은 생물학적 혈연과 함께 보낸 시간 중 어떤 것이 더 ‘진짜 가족’을 만드는가라는 주제를 던지며, 일본의 전통적인 가부장제 가족관을 근본부터 흔든다. 고레에다는 아버지 료타를 통해 부성애란 결국 관계의 시간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임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감정선은 단순한 눈물샘 자극이 아닌, 관계의 본질을 향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또한 죽음과 존재의 의미 역시 그의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테마다. 《원더풀 라이프》(ワンダフルライフ, 1998)는 죽은 자들이 사후 세계에서 하나의 기억만을 선택해 이승을 떠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영화는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져갈 단 하나의 기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삶의 의미와 본질을 돌아보게 만든다. 고레에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거울이며, 기억이란 인간의 정체성과 감정의 본질을 응축하는 결정체다.
이처럼 그의 영화는 가족, 생명, 죽음을 통해 인간이 관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철학적으로 탐색한다. 그리고 이 주제들은 일본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실적 문제들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저출생, 고령화, 고립, 교육 시스템의 경직성 등 일본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고레에다 영화의 배경이자 맥락으로 작용하며, 그는 그 안에서 가장 인간적인 순간들을 길어 올린다.
서사는 사소한 일상 속 갈등
고레에다 영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서사의 낮은 강도’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큰 사건이나 반전, 클라이맥스는 없다. 대신 아주 사소한 일상, 한 끼의 식사, 조용한 대화, 함께 걷는 장면 등을 통해 인물들의 갈등과 감정 변화가 서서히 드러난다. 이러한 서사는 오히려 관객에게 더 큰 몰입과 여운을 안겨준다.
《걸어도 걸어도》(歩いても 歩いても, 2008)는 전형적인 고레에다식 서사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한 가족이 여름에 모여 돌아가신 장남의 기일을 함께 보내는 이야기인데, 전체적으로 특별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사 하나하나, 미묘한 표정, 말없이 엇갈리는 눈빛 속에 가족 내의 긴장, 회한, 사랑, 서운함이 응축되어 있다. 이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의 ‘정지된 시간’ 서사를 계승하면서도, 현대 일본 사회의 감정 구조에 맞게 재해석한 고레에다만의 리듬을 완성한다.
그의 서사는 종종 ‘관찰자 시점’으로 연출된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시작한 그의 이력이 반영되어, 고레에다는 인물을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멀찍이서 지켜보듯 연출한다. 이는 《아무도 모른다》(誰も知らない, 2004)에서 두드러진다. 어린아이들이 방치된 채 살아가는 비극적인 이야기이지만, 카메라는 결코 그들을 과장하거나 감정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그리고 냉정하게 그들의 선택과 생활을 따라가며, 관객이 직접 판단하고 느끼도록 유도한다.
고레에다의 서사는 또한 비선형적이다.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교차하고, 회상의 플래시백이 없이도 현재 장면 속에 과거의 그림자가 스며들어 있다. 《바다 마을 다이어리》(海街diary, 2015)에서는 세 자매와 이복동생이 함께 살아가면서 과거 어머니와 아버지의 흔적을 마주한다. 이 영화는 가족이라는 구조가 단절과 연결을 반복하며 서서히 관계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느리지만 탄탄한 리듬으로 풀어낸다.
결국 고레에다의 서사는 겉보기에 정적이지만, 내면은 치열하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 시선이 머무는 시간, 인물 간의 거리감은 그의 서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는 끝까지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인물의 선택을 보여줄 뿐이다. 이 모호하고 열려 있는 서사는 오늘날 많은 감독들이 참고하는 연출 전략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결핍된 존재들의 화해와 성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인물들은 대부분 ‘결핍된 존재’들이다. 부모의 부재, 사랑의 부족, 경제적 곤궁, 사회적 소외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들은 결코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작고 소소한 관계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고, 천천히 성장하거나 화해를 경험한다.
《아무도 모른다》의 주인공 유키는 열한 살의 나이로 동생들을 돌보며 어른이 된다. 어른들의 무책임 속에서도 그는 자기 나름의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고레에다는 그를 불쌍한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유키는 현실을 살아가는 주체이며,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않는 인물로 그려진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奇跡, 2011)에서는 부모의 이혼으로 떨어져 살게 된 형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은 ‘기적’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만, 결국 기적이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변화, 태도의 전환, 작은 이해의 순간임을 보여준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순수하지만 날카롭고,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주체적이다.
고레에다의 여성 인물들도 돋보인다. 《바다 마을 다이어리》의 네 자매는 모두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지지해 주며 관계를 만들어간다. 특히 장녀 사치는 책임감이 강한 인물이고, 이복동생 스즈는 가족의 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며 성장한다. 이들의 대화는 늘 조용하지만, 감정의 깊이는 매우 크다.
고레에다는 인물들을 도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도둑질을 하는 가족도, 살인을 저지른 사람도, 도망친 엄마도 모두 한 인간으로 존재하며, 그들의 삶엔 맥락이 있다. 그는 이 인물들에게 말한다: “너는 왜 그런 선택을 했니?” 그리고 그 물음에 답하는 대신, 그들이 어떤 시간을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결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조용히, 그리고 깊이 있게 인간의 내면과 사회 구조를 비춘다. 그는 가족이라는 프레임을 중심에 두되, 그 안에 다양한 사회 문제와 인간 감정의 결을 집어넣는다. 주제의 깊이, 서사의 절제, 인물의 정교함이 어우러져 고레에다 영화는 언제나 관객의 마음에 오래 남는 여운을 남긴다.
2024년 현재, 분절된 사회와 고립된 개인이 늘어나고 있는 시대에, 고레에다의 영화는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그는 영화라는 예술을 통해 인간에 대한 믿음, 관계의 복원, 그리고 삶의 의미를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단지 ‘감성적인 일본 감독’이 아닌, 삶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철학자이자, 시대를 비추는 관찰자다.